범죄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복잡한 심리를 파헤치는 작품들이다. 선과 악의 경계, 도덕적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을 조명하며 추천작들을 소개한다.
범죄자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영화 속 범죄자는 대개 ‘악인’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은 정의의 편에 서 있고, 범죄자는 응징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구조는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온 스토리의 틀이다. 하지만 그 틀을 깨고, 오히려 범죄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들은 관객에게 전혀 새로운 감정과 사유를 안겨준다. 이들은 단순히 자극적인 범죄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왜 누군가는 범죄자가 되었는지, 그 안에 감춰진 인간성과 심리는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범죄자 관점의 영화는 도덕적 모호성을 중심에 둔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흑백 논리가 아닌 ‘회색지대’에 존재함을 보여주며, 때로는 범죄자에게 공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되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함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영화들 속 주인공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인간, 사회의 희생자, 혹은 환경에 의해 왜곡된 존재로 묘사되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영화는 또한 서사의 구조 자체를 비틀거나,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을 통해 ‘도덕적 딜레마’를 부각시킨다. 누가 진짜 나쁜 사람인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은 정말 가능한가? 이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중요한 주제다. 따라서 범죄자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넘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악의 시선, 인간의 본성: 대표적인 범죄자 중심 영화
범죄자의 시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낸 영화로는 『조커(Joker, 2019)』를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기존 히어로물의 악당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그가 어떻게 ‘조커’라는 인물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전기적 형식의 드라마다. 사회적 소외, 정신적 고통, 빈곤, 무관심이 뒤엉켜 한 인간을 파괴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범죄자의 탄생을 이해하게 만드는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도덕적 혼란을 야기한다. 단순히 악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한 사회의 민낯을 조명한 작품이다. 또 다른 대표작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이다. 이 영화는 냉혹한 살인자 안톤 쉬거를 중심으로, ‘절대 악’과 마주한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는 이유 없는 악행을 저지르며, 오히려 법과 정의보다 더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관객은 그에게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무력함과 도덕의 허약함을 목격하게 된다.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는 성공한 월가의 엘리트가 동시에 연쇄살인범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와 인간 소외를 비판한다. 패트릭 베이트먼이라는 인물은 냉혈한 살인자이지만, 동시에 사회가 숭배하는 ‘성공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의 심리적 공허함과 광기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은, 범죄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면을 드러낸다. 『올드보이』는 복수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복잡한 도덕적 구조를 보여주는 한국 영화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오대수는 처음에는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 역시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복수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한 상황을 통해, 인간의 기억, 죄책감, 원한의 감정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또한 넷플릭스의 『마인드헌터』나 『유(YOU)』 같은 작품은 실제 범죄자들의 심리 분석 혹은 살인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현대 스릴러 장르에서 ‘범죄자 중심’ 서사의 인기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유』는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라고 믿는 병적인 심리를 통해, 사랑과 집착, 도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처럼 범죄자 중심의 영화들은 단순한 폭력이나 충격적 장면이 아닌, 그 인물들이 범죄에 이르게 된 동기와 사회적 구조, 내면의 심리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결국 이 영화들은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관객의 윤리적 사고를 시험하게 된다.
악인의 이야기, 인간을 돌아보게 하다
범죄자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들이 지닌 가장 큰 가치다. 우리는 흔히 ‘선’과 ‘악’을 구분하며 살아가지만, 실제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회적 배경, 심리적 상처, 환경적 요인 등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며,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해부하듯 보여준다. 그 속에서 관객은 스스로의 편견과 윤리의식을 되짚어보게 된다. 단순히 나쁜 짓을 했다는 이유로 배척하기보다는, 그 이면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은 비단 영화 속 인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 속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이들 영화는 사회가 범죄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담고 있다. 복지의 부재, 고립된 사회 구조, 정신질환에 대한 무관심 등이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범죄자의 시점에서 본 영화는 ‘악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그리고 사회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어둠 속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한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 오늘 당신이 본 범죄자의 이야기는, 내일 누군가의 진실일 수도 있다.